가이드 보컬 작업을 위해 ElevenLabs에 목소리를 올려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넘겨봤을 약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플랫폼이 업로드된 음성 데이터에 대해 영구적이고 취소 불가능한 라이선스를 갖는다는 조항인데, 단순한 개인정보 이슈가 아니라 성우·배우·뮤지션의 생계와 직결되는 계약 문제다.
약관에 실제로 뭐라고 적혀 있나
ElevenLabs 이용약관(elevenlabs.io/terms-of-use)의 Content 라이선스(d항)와 Voice Model 라이선스(e항)는 사용자가 업로드한 콘텐츠 및 생성한 보이스 모델에 대해 플랫폼이 ‘서비스 제공·개선·신규 서비스 및 제품 개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구적이고 취소 불가능한 라이선스를 갖는다고 명시한다. 다만 ElevenLabs는 별도 조항(1-11)을 통해 ‘목소리를 독립적으로 상업화(commercialize on a standalone basis)하지 않겠다’는 제한을 두고 있다.

Suno 약관(suno.com/terms-of-service) 11-3항은 한층 더 직접적이다. 업로드된 데이터에 대해 플랫폼이 ‘monetization, promotion, marketing’ 목적의 서브라이선스(sublicense) 권한을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ElevenLabs보다 사용 범위가 넓게 기재되어 있는 셈이다. 두 서비스 모두 업로드 시점부터 이 라이선스가 발효되며, 계정을 삭제해도 이미 부여된 권리는 유지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한국 법리 위에서 이 조항은 유효한가
한국 법원은 목소리(음성)를 인격권의 한 영역으로 보호해왔다. 성우가 목소리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음성이 독립적인 경제적 가치를 지닌 인격적 이익임을 전제로 한다. 즉, 약관 동의 한 줄로 이 권리가 무제한 이전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걸 입증하는 과정이다. 어떤 플랫폼이 내 목소리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추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현재 한국 성우·배우 표준 계약서에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조항이 명시된 비율은 업계 체감상 극히 낮다. 일부 대형 성우 에이전시에서 조항을 삽입하기 시작했지만, 절대다수의 성우는 아직 해당 보호 장치 없이 일하고 있다. 실제로 대기업 프로젝트에서도 별도 고지 없이 AI 음성 플랫폼이 사용된 사례가 있을 만큼, 제작사나 에이전시 차원의 인식은 아직 낮다.
계약서에 지금 당장 넣어야 할 조항
약관 리스크를 회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플랫폼 약관에 기대지 않고,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서에 직접 명기하는 것이다. 실무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문구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납품된 음성 결과물 및 원본 녹음 파일을 AI 학습 데이터, 보이스 클론 생성, 음성 합성 모델 훈련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한다는 조항. 둘째, 외부 플랫폼(ElevenLabs, Suno 등 명칭 또는 유사 서비스 일반 포함)에 업로드하거나 해당 플랫폼의 약관에 따른 라이선스를 제3자에게 부여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조항. 셋째, 위반 시 손해배상 청구 근거를 명시하는 조항.
조항 삽입에 대한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걸 먼저 꺼내는 문화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년 뒤에도 이 논의가 필요할까
성우 입장에서 ‘AI 플랫폼 업로드 금지 및 음성 데이터 귀속 조항’이 표준 계약서에 포함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깝다. 악용 가능성이 충분히 높고, 이미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만 업로드된 목소리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입증하는 것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약관을 읽지 않고 올린 목소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